I ask to you like this, “What the art exist for?” 당신에게 예술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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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ually, people have a doubt about nobility and the root of the art which is treated more than the meaning of practicality. As the same reason, the public can feel that it is not fair to read too much into the complexity of the art and some great works. In human history, though a lot of intellectuals and great men agonized and advanced their own plausible opinions about this question, it constantly returned to the first place and asked again over and over.”What is the art existed for?”
However if you consist that the beautiful paint or cloth is just a beautiful paint or cloth, nothing more or less meaning than that, what can the artist say more? If there only exist the means of reappearance or decorative feature in the art, for example, no moral lesson, no inspiration, no healing and no quadrabrilation, the art can be understood only one way. ‘The last struggling of the human who wants to get out of nihilistic doubts which is inevitable dilemma in our lives’ In other words, people read too much into everything in this world obsessively, bid to find something more than facts, and try to interpret every situation just because they can’t find any meaningful thing in their real lives. -Hoping that everything in this world would never be existed and created simply. Hoping that we all have some important reason why we are living in this world.
But, if all of these ideas are true, I must say that it is meaningless that I agonize and write about this question. All at once, I felt a strong aversion to all of these pessimistic and nihilistic stances. I couldn’t stand this irresponsible and gloomy conclusion about the art any longer. I really want to prove that the art is much more valuable thing than we imagine. And I also want you to pay attention to my every funny, scandalous writings about the art which will be continued. So I will dare talk about the essence of arts.
But think about this right now. Imagine that you are watching a peach in the still life paint of 18C Spanish painter, Luis Egidio Meléndez. At this moment, we do not only see the paint of the peach which is extremely realistic. We can imagine some fresh juice of the peach through the throat, and even feel it. This is horrifyingly precise prophecy and admiration of the freshness that is more realistic than ‘real one’.
Now, lift up your eyes to Michelangelo’s “Creation of Adam”. We are profoundly moved by every colors and religious inspirations that is extremely BEAUTIFUL, and astonished by his quadrabrilation, regardless of its history, knowledge and behind story. This is holy, inviolable report to the unknown world.
How about Beethoven’s Symphony? Just listenthe first movement of “Symphony No.5” which is one of the most famous classics. Listen it at full volume that you feel your ears ringing. Feel that the grandiosity is flowing into your heart. Ladies and gentlemen, this is the song of the deaf! Please ask yourself. What would have the deaf composed for? No. It was just his life. That feeling of grandiosity was exactly his life. And at the same time it was a warning to us, our life of ease. Maybe for him, the music or the art were existed as a desperate window for communicating to the world out of the darkness.
Of course, there will be no exception in the movie, in the fashion, in every tiny wording, in whatever. When Gabrielle Chanel presented simple mini dress, shoulder bag, and the trousers (which was the exclusive propriety of men) for liberating 20c women from corset, uncomfortable tote bag and long pigtail skirt, it was not just for liberal defiance or the abolition of the outmoded custom.Coco Chanel’s whole life story, her philosophy ‘Less is more’. -Her miserable, happy days, retrospection of complicated relationships with men and her philosophical passion for the art.
At the same reason, when we receive Comme des garcons collection, we never blame Rei Kawakubo because her works are not realistic or wearable. That is because every her works show the playful essence of the art and we already know that is just same as what our life have to be -Humans are playful existence-.The expression that she does is the thing we know but never express.
Even if I’m not an optimist, it is conclusively clear fact. Not just the word. But it really does. The art is our lives itself.Art doesn’t exist for something; it exists just the way it is. And it exists differently to each other. To some people, it takes the shape of window to communicate to the world, to some people, a diary for remembering some beautiful scene, to some people, a rose for confessing one’s love.So it is not right to insist that the art exist for some noble reason. Because the art exists for the artist who is the main agent of creation, for the public who is the main agent of enjoyment and for you who are the main agent of the life.
Let me say it again, “every independent individual’s life is the art”. So the art has always existed and always will forever.(I never intend, but unfortunately my opinion like this collide head on with the dilemma ‘If fashion is for everyone, is it fashion?’in column “The circus of fashion” which was written by Suzy Menkes who I respect most in the fashion world. –of course I would like to answer “YES!”-)
Therefore, if you want to ask what the art exist for, please ask yourself first like this. “What I am living for?” Because your answer of this question will be exactly same with the ontological question of the art.
흔히 사람들은 관념적으로만 대우받는 예술의 가치와 근원에 대해 의문을 품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예술의 복잡성과 예술품을 향한 비평가들의 지나친 의미부여가 대중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더러 있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지성들이 예술의 본질과 목적성을 고민하고 나름대로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와 되물을 수 밖에 없었다.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만약 그림이나 옷이 보기에만 좋을 뿐, 그 이상의 가치가 없다고 한다면 화가와 디자이너와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예술이 재현의 수단이나 장식성 이외에 그 어떤 것도 기능도 하지 않는다면, 예술은 단 한가지로 이해될 뿐이다. ‘인생에서 불가피한 허무주의적 회의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인간의 마지막 몸부림.’ 다시 말해 삶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어서 인간은 집착적으로 모든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실 이상의 무언가를 찾아내려 애쓰며 모든 상황을 해석하려 든다는 것이다. 삶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단순이 존재하거나 창조되는 것이 아닐거라고, 분명 무언의 의미를 지니고 있을 거라고 희망하며.
그러나 만약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이런 고민도, 글도 무의미해질 뿐이다. 때문에 비관론을 바탕으로 한 예술의 종말을 떠들며 무책임하고 암울한 결론이 아닌 다른 이야기가 필요한 것이다. 예술은분명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이기에, 감히 예술을 논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18세기를 대표하는 스페인 정물화의 대가 루이스 에우헤니오 멜렌데스의 정물화 속 복숭아를 상상해보자. 사람들은 그림 속에 극명하게 사실적으로 표현된 복숭아만을 보진 않는다. 일부의 사람들은 목안으로 넘어가는 복숭아의 상쾌한 과즙을 상상하고 나아가 느낄 수도 있다. 그것은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신선함에 대한 소름 끼치도록 정확한 예언이자 예찬이다.
이번에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보자. 사람들은 그 작품의 역사적인 배경이나 숨겨진 이야기와는 상관없이 천재적인 표현에 경악하고 온갖 극적인 아름다운 색감들과 종교적 표현에 감동한다. 그것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신성한 보고다. 그렇다면 베토벤의 교향곡은 어떤가? 누구나 알만한 교향곡5번 1악장부터 끝가지 진지한 자세로 감상한다면 가공되지 않은 웅장한 감동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설령 귀머거리의 작품이지만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듣지 못하는 자가 무엇을 위해 작곡을 했겠냐고. 하지만 그것은 그의 삶이었다. 그 웅장함은 베토벤의 삶이자 안일한 삶에 대한 경고였다. 어쩌면 그에게 음악이나 예술은, 어둠 속에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처절한 창이었을지 모른다.
물론 영화나 패션, 작은 글귀 하나 까지 예외란 없다. 마드모아젤 샤넬이 20세기 여성들을 코르셋과 불편한 토트백, 그리고 치렁거리는 롱 스커트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심플한 미니드레스와 숄더백, 그리고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바지를 여성들에게 선사했을 때, 그것은 진보주의적 반항이나 구시대적 관습 타파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곳엔 ‘Less is more’라는 철학과 함께 코코 샤넬의 모든 인생이 담겨있었다. 그녀의 우여곡절 많았던 인생과 복잡했던 이성관계에 대한회상과 예술을 향한 철학적 열정이 그녀의 작품 속에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우린 레이 가와쿠보의 꼼데가르송 컬렉션을 실제로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라고 해서 그녀를 비난하거나 비웃지 않는다. 그녀의 모든 작품 속에는 패션의 유희적 본질이 담겨있으며, 그것이야말로 바로 사람들의 본능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유희적 존재라는 것, 그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행하지 않는 것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낙천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실로 모든 존재는 예술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단지 말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야말로 바로 우리 삶, 그 자체이다. 예술은 무언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누군 가에겐 세상과 소통하는 창으로, 누군 가에겐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한 일기장으로, 또누군가 에게는 사랑을 고백하기 위한 한 송이 장미꽃으로, 그렇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평범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고귀한 것만이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 예술은 창작의 주체인 예술가에게서 태어나서, 향유의 주체인 대중과 함께하고, 삶의 주체인 당신을 향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예술은 ‘독립적 개체로서의 인간 한명의 생 자체이다’. 그렇기에 예술은 언제나 존재해왔고 항상 존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의도하진 않았지만 이러한 나의 견해는 내가 가장 존경해 마지않는 패션칼럼니스트 수지맨키스의 칼럼-풍자칼럼- ‘패션공작새들’에서 그녀가 우리모두에게 던진 질문인 “패션이 모두를 위한 것이라면 그것이 패션인가?”과와 정면으로 대립한다. 물론 난 여기에 절대적으로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왜 예술이 존재하는지 묻는다면, 먼저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해보기 바란다. “나는 왜 살아가고 있는가?” 그것의 대답이야 말로 곧 예술의 존재론적 질문에 대한 해답과도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Contributor, Lee Seung Min
A freelance fashion columnist, Lee Seung Min tells about fashion, art, culture by his own unique view point more in-depth and make interesting.
프리랜서 패션 칼럼니스트인 이승민은 패션과 예술, 그리고 문화 전반에 대한 심층적이고 솔직한 이야기들을 독특한 시각으로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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