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지선의 예술 탐구생활, “점에 관하여” An artist Lee Ji Sun’s art life of research, ‘About the point’
Images & Texts by Lee Ji Sun
새하얀 도화지에 떨어뜨린 까만색 잉크 한 방울은 텅 비어있다고 여겼던 순백의 공간을 순식간에 장악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어떤 색이든 종이 위에 묻힌 순간에 나름의 크기와 모양이 생기지만, 첫눈에 보기에 그것은 주로 점이라고 불린다.
점은 크기가 없고 위치만 있는 도형이자 가상적인 개체이다.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 위치를 움직여서 선을 긋고, 더 나아가 평면과 입체 면까지 이루는 모든 도형의 가장 기본이자 시작이 되는 요소이다.
이미지가 아닌 기호로서 각국의 언어에서도 점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글자를 이루고 그 모양과 의미를 정의 내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자는 지평선을 닮은 가로선 위(上) 아래(下)에 점을 하나씩 찍어 문자의 모양과 의미를 일치시키기도 한다. 알파벳에서 특히 내가 애착을 갖는 아홉 번째 소문자 ‘i’도 세로선 위에 하나의 점으로 이루어져있다.
흰 눈이 쌓인 길을 걸어간 발자국처럼, 혹은 헨젤과 그레텔이 남기고 간 과자부스러기처럼, 점은 홀로 있을 뿐 아니라 두 개, 세 개 혹은 줄지어 나란히 놓여있기도 한다. 그래서 말의 끝을 맺기도 하고, 침묵의 고요함을 나타내기도 하며, 넘어갈 수 있는 경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물을 머금은 묵으로 그림을 그리는 동양화에서 점은 종이에 스며들며 퍼지는 질감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무한한 공간을 상징하기도 한다. 붓에서 튀어서 묻어난 점들, 물방울이 맺히듯 붓의 끝에서부터 흘러 들어 퍼지는 점, 혹은 작가의 힘이 그대로 드러나는 점 등 먹의 농담과 종이의 질감에 따라 단순하면서도 강렬하고, 공허하면서도 가득 찬 형태를 남긴다.
서양화에서 점은 자유로운 공간 위에 다른 기하학도형들과 함께 체계적이면서도 장난스러운 구조를 이룬다. 지금도 여전히 사랑 받는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 사각의 캔버스 위에 작가들의 붓 놀림과 세월이 묻어난 색을 그대로 담은 수많은 점들이 가득 차있다. 점들은 서로 겹치며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고 하나의 풍경이나 인물을 나타낸다. 추상색채화의 선구자이자 예술이론가인 바실리 칸딘스키는 점을 단순한 수학적 추상요소가 아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색이자 도형으로 보았고 원의 형태뿐 아니라 다각적이고 유기적인 형태로 표현했다.
현대미술에서 점은 조금 더 다양하고 복잡한 차원으로 나타난다. 보여지는 모든 표면을 점 무늬로 가득 채우기도 하고, 영상 안에서 춤추는 점들로 환상적인 무대를 꾸미기도 한다. 특히 점은 원과 구의 모습을 주로 빌려서 캔버스 위를 넘어 3차원 혹은 4차원적인 공간의 무게중심을 잡고, 흐름을 멈추며, 잠들어 있던 것들을 깨우고,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맺기도 한다. 온 세상을 비추는 태양도 드넓은 우주에서는 하나의 밝은 점일 뿐이듯이, 최소한의 단위인 점은 가장 넓거나 가장 깊은 공간에서 위치를 잡아주고 끝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현재를 바라보게 한다.
Lee Ji Sun is a young Korean artist, who does activity in Paris, France. CultureM Magazine releases her art works images by drawing, writing, video, photograph in every month. http://leejisun.blogspot.kr/
이지선은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하는 젊은 한국여성작가이다. 회화, 비디오, 사진, 글 등의 다양한 매체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컬쳐엠이 소개한다. http://leejisun.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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