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지선의 세 번째 예술 탐구생활, ‘비에 관하여’ Lee Ji Sun’s ‘About the rain’

8월 18, 2014 at 1:45 오후 , , , , rain, 비, 아트엠콘서트, 아트엠플러스, 이지선 Lee Ji Sun, 컬쳐엠, 컬쳐엠 매거진
0 Flares Twitter 0 Facebook 0 Filament.io Made with Flare More Info'> 0 Flares ×
CultureM_C_N3_images_10

Bus stop(Seoul, 2014) – Lee Ji Sun

Photos by Lee Ji Sun(original copyright marked on each image by caption) 

바위 사이로 이리저리 부딪치고 자그마한 물고기들을 간지럼 태우며 시냇물이 흐른다. 호숫가에 다다른 고요한 물 웅덩이에는 새들이 잠시 앉아 쉬어가기도 하고, 다람쥐가 들러서 목을 축이기도 하며 걸어가던 나그네의 투명한 물병에 담기기도 한다.
덩어리로 모여 흐르거나 고여있던 물방울들은 서서히 공기에 몸을 맡기고 하늘위로 날아간다. 꼭 붙잡고 있던 손을 잠시 놓았다가 자유롭게 비상한 끝에 다시금 하늘 위 어느 지점에 모여서 삼삼오오 손을 잡고 둥실둥실 떠다닌다. 그리고 다시 이곳, 땅으로, 강아지의 콧잔등 위로, 향긋한 꽃잎 위로 떨어진다.

CultureM_C_N3_images_03

The Garden of Works(Film excerpt, 2013) – Makoto Shinkai(images from www.raungi.tistory.com)

나는 비를 좋아한다. 한여름 햇빛에 뜨겁게 달궈진 아지랑이 피는 땅바닥을 식혀주는 소나기도, 우산을 쓰기에도 안 쓰기에도 애매한 부스러지는 부슬비도, 저 멀리로 날려보내려는 듯이 사방으로 바람 불며 내리는 폭풍우도, 잠 못 들던 늦은 밤에 은은한 노랫소리처럼 들려오는 새벽 비도.
내리는 동안엔 조금 귀찮고 조금 번거롭기도 하고 내 모습이 조금 못나지기도 하지만, 상쾌하게 아침을 깨우는 샤워처럼 비는 쌓여만 가던 먼지도 상처도 씻어낸다.

CultureM_C_N3_images_08

i : dream(video excerpt) – Lee Ji Sun

비는 회색 빛의 하늘과 희미한 풍경, 촉촉하거나 찜찜한 살갗의 느낌을 만들어낸다. 시선의 앞과 뒤로 쏟아지면서 그 어떤 풍경도 희미하게 만들어 버리고 반짝이던 색 마저 바꿔버린다.
비가 내리기 시작할 무렵 풍겨오는 비의 냄새와 뼈마디의 반응, 곤충들의 움직임과 농부들의 서두름. 작은 물방울들의 추락은 이전의 행동을 잠시 서둘러 멈추게 하고, 쉬어가게 한다.
영화나 문학작품에서 주로 우중충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내는 비 오는 풍경은 예쁜 여자의 익숙한 노래로 밝은 느낌을 내기도 하고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CultureM_C_N3_images_09

Windows(ink & watercolor on paper, 2013) – Lee Ji Sun

미처 흐르거나 떨어지지 못하고 애매한 높이에서 멈춰버린 안개는 바라보던 눈 앞의 풍경을 얇은 천으로 덮어버리고 비 오던 그날의 기억을 눈앞에 가져다 놓는다. 안개 속 나란히 서있는 나무들은 그 앙상한 가지만 뻗고 있어도 혹은 무거워 덩어리째 떨궈 질것 같이 풍성한 나뭇잎을 지고 있어도 늘 고요하기만 하다.
그 정적 속에서만 들려오는 공기의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덧 들리지 않던 새의 지저귐도 들리고, 여전히 간지러워하는 시냇물 소리도 들리고, 어딘가로 하염없이 달려가는 자동차의 덧없는 엔진소리도 들려온다.

CultureM_C_N3_images_06

Untitled photography(Geneva, 2013) – Lee Ji Sun

그리고 마침내 무거워 뒤뚱거리던 구름이 지나가고 낮게 깔려있던 하늘이 한층 위로 올라간다. 실수 없이 째각째각 울려 퍼지던 시계추 소리도 언제 사라졌었냐는 듯 다시 귓가에 맴 돌 때면 안개 꼈던 눈앞에도 다시 불이 켜지고 회색 빛은 무지개 빛으로 물든다.
쉼 없이 내렸던 비는 작은 웅덩이들을 만들고 뺨 위에 한 두 방울의 흔적만 남기고 곧 사라져버린다. 어두운 땅속 깊은 곳으로 스며들어 기억의 씨앗에 물을 주거나, 그새 하늘 위로 올라가서 언젠가는 다시 내려 방금의 기억을 떠올릴 준비를 한다.

 

 

SONY DSCContributor, Lee Ji Sun

Lee Ji Sun is a young Korean artist, who does activity in Paris, France. CultureM Magazine releases her art works images by drawing, writing, video, photograph in every month. http://leejisun.blogspot.kr/

이지선은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하는 젊은 한국여성작가이다. 회화, 비디오, 사진, 글 등의 다양한 매체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컬쳐엠이 소개한다. http://leejisun.blogspot.kr/

Comments are closed

0 Flares Twitter 0 Facebook 0 Filament.io 0 Flar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