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 관한 짧은 소고 Lee Ji Sun’s art life of research, ‘About the train’
Images by Lee Ji Sun
그 날이 왔다. 출발 몇 시간 전부터 짐은 이미 굴러갈 준비를 하고 덩그러니 서있는 가방에 빽빽하게 차있다. 급할 것도 불안할 것도 없지만 예상보다 조금 더 일찍 집을 나선다. 한껏 부풀어 오른 짐을 끌고 정해진 자리 없이 수시로 쉬어가는 버스를 탄다. 그리고 미리 예약해놓은 자리가 마련된, 기차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역으로 향한다. 아직 열차에 오르지도 못했지만 이미 여행은 시작되었다.
여러 개의 방이 길게 줄 맞춰 이어져 있는 기차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방향으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출발한다. 각각의 방마다 또 한번 줄 서있는 자리에는 조금 전 다녀간 사람들과는 다른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와 당분간을 위해 예약된 좌석에 자신의 자리를 잡는다. 출발음이 울리고 문이 닫히면 길고 무거운 철 덩어리는 부르르 떨면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만히 있는 몸은 서서히 빨라지는 진동을 느끼고 창밖에 지나가는 풍경들을 바라보면서 비로소 출발을 한다.
움직이는 방, 거미줄처럼 땅바닥에 이어져 깔려있는 철길을 따라서 방들은 일렬로 흐트러짐 없이 달린다. 앞과 뒤를 바라보며 고정되어 있는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끊임없이 지나 가는 풍경들에 초점을 맡긴다. 내 귀 안에만 울리는 음악은 앞으로 이 방안에서 지나갈 시간의 템포를 적절히 조절해줄 메트로놈과도 같다.
옆 사람은 이미 테블릿 화면 속 연기자들의 농담에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여행을 시작한다. 무릎 밑에 누워있는 가방 속에는 조금 뒤 이어폰에 귀가 답답해할 때쯤 꺼내서 읽을 책 한 권과 언제든 무엇이든 적힐 준비가 되어있는 노트 한 권, 머릿속을 잠시나마 정리해주는 스케줄러가 순서 없는 차례를 기다린다.
각 방에는 서로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일면식도 없는 타인들이 바로 그 시간, 그 방향을 향해 가는 우연적이고 일시적인 집합체를 이룬다. 서로의 연결점은 오직 그들이 몸담고 있는 기차라는 장소와 그 기차가 출발하고 도착하는 시공간 속 동시적인 존재뿐이다. 그보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공유되지 않는다.
각자가 준비해온 끼니 거리를 따로 꺼내서 먹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며 누군가는 시간의 노예가 되기도 한다. 지루함과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는 아이들의 칭얼댐이나 유난히 귀에 들어오는 아무개의 목소리들은 제한된 움직임으로 끼어있는 기차 안에 함께 갇혀있는 시간에 무게를 더한다.
한편, 기차는 달린다. 예정된 일정에 맞춰 승객들을 정해진 목적지까지 이동시키기 위해 하염없이 바퀴를 굴린다. 잠시 멈춰가는 역에는 이 이름없는 덩어리에 뒤늦게 합류하는 몇몇을 더하거나 조금 일찍 떨어져 나가는 사연 모를 누군가를 뺀다. 창밖에는 형태를 잃은 풍경들이 가로로 늘어져 오직 한 방향으로 지나가고 저 멀리 그려진 지평선과 나는 서로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리곤 한다.
지나가는 색들이 층층이 쌓여 만들어 내는 영상에 취해 잠이 들었다가 이내 다시 깨어난다. 잠시 꿈속에 빨려 들어갔던 몸은 다시금 기차 안 주인 없는 방안에 잠시 빌려둔 내 자리에 앉는다. 몸과 함께 소용돌이 치는 꿈에 빨려 들어갔던 시간은 조용히 미끄러지듯 흘러가는 철도를 따라 기차와 함께 달린다.
Lee Ji Sun is a young Korean artist, who does activity in Paris, France. CultureM Magazine releases her art works images by drawing, writing, video, photograph in every month. http://leejisun.blogspot.kr/
이지선은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하는 젊은 한국여성작가이다. 회화, 비디오, 사진, 글 등의 다양한 매체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컬쳐엠이 소개한다. http://leejisun.blogspot.kr/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