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라렌 베일에는 진짜 호주 와인이 있다 One fine day in McLaren Vale
Photos by Bae Doo Hwan
맥라렌 베일을 두 번째 방문할 때는 처음보다 한결 쉬웠다. 사실 외국 여행을 하면 길 때문에 한참을 헤매기 일쑤다. 어떻게 보면 두 번째 방문했을 때 진정으로 그 지역이나 와이너리를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맥라렌 베일 중심가에 도착하고나니, 처음의 어리바리 했던 모습이 생각난다. 버스타고 2시간, 걸어서 2시간이나 걸렸으니. 두 번째는 막힘 없이 기차를 타고 버스로 갈아타서, 거의 한 시간 만에 중심부에 도착한 것 같다.
오늘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줄 알았던 자전거를 타고 포도밭을 누비기를 해보기로 했는데, 눈여겨둔 자전거 대여 가게 주인장이 라이딩 하러 떠났다는 쪽지 하나만 대문에 붙여놓고 문을 굳게 닫았지 뭔가. 허탈한 마음에 걸어서 와이너리를 둘러볼까 하다가, 그제 보았던 기차 레스토랑에서 자전거를 빌리기로 했다.
이름은 캐리지 카페(Carriage Cafe). 자전거는 1시간에 7달러, 최소 대여 시간은 3시간 즉, 인당 21달러. 원래 가려고 했던 곳은 시간당 5달러여서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었지만 여기라도 있는 게 어딘가 싶다. 감사한 마음으로 자전거를 대여한다.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기는 하는데, 외국인이 어떻게 하랴. 그냥 신용으로 맡기는데, 여권을 요구할 수도 있으니, 반드시 챙겨서 가긴 해야 할 것 같다.
본격적으로 라이딩을 하려고 하지만, 사실 부인이 자전거를 못 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한다고 각자 빌리긴 했는데, 10m도 못가고 서기를 반복. 거기다가 비까지 조금씩 내리니 아무래도 제대로 힘들 것 같다. 잡아주고, 기다려주고. 사실 필자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자전거를 타고 매일 등하교를 했기 때문에 자전거라면 이골이 난 사람이다. 옆에서 지켜보니, 정말 재밌다. 하도 웃어서 배가 아팠는데, 부인 입장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기도 하다. 느리지만 전진은 한다.
어쨌든 포도밭을 배경으로 달리니 기분은 정말 좋다. 달리다가 지천에 널린 포도밭에서 포도를 따먹어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한다. 이윽고 세라피노(Serafino) 와이너리에 도착했다. 셀러 도어는 물론, 레스토랑에 숙박시설까지 갖춘 굉장히 규모가 큰 와이너리다. 양조장까지는 가보지 못했지만, 카메라에 전부 담기가 힘들만큼 상당히 넓다. 와이너리 안에 무지막지하게 넓은 공원이 있는데, 거위가 많이 살고 있는데 와이너리의 심볼도 거위인 듯 하고 와인 중에 구스 아일랜드라는 레인지가 있다.
바로 테이스팅을 시작했는데,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와이너리에서 테이스팅을 하는 거라 약간 흥분했는지, 한 잔에 10달러나 하는 비싼 와인을 테이스팅 했다. 지금 생각하면 돈이 조금 아깝다. 그 비쌌던 와인 이름이 세라피노 테레모토 시라였는데, 그래도 비싼 값은 하는 와인이었다. 호주 달러 병당 150이었다. 아마 우리나라에 오면 30만원은 족히 할 듯하다. http://serafinowines.com.au/
세라피노는 1964년 이탈리아에서 호주 맥라렌 베일에 이주한 이탈리아 청년이 설립한 와이너리다. 그 청년 이름이 세라피노 마길레리(Serafino Maglieri)다. 예를 들어 이름이 김철수면, 철수 와이너리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는 이주할 때 양복 한 벌과 지금 돈으로 20달러만 손에 쥐고 여기 왔다는데 대단한 용기와 배짱이다. 그래도 이렇게 성공했으니, 얼마나 뿌듯하랴.
여튼 세라피노 할아버지는 당시 닥치는 대로 과수원에서도 일하고 포도밭에서도 일하고 하다가 돈을 좀 모았는지, 1972년에 지금의 와이너리를 설립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변함없이 승승장구. 첫 와이너리라 그런지 조금 과하게 마신 듯하다. 조금 알딸딸하다. 그래도 자전거를 탔으니, 괜찮다. 여기는 자전거 도로가 엄청 잘되어 있어서 차와 마주칠 경우는 거의 없다. 사람도 거의 없어서 사람과도 부딪힐 일이 없다. 나 자신만 조심하면 된다.
계속 이동이다. 조금 지나니 넓은 평야가 나오고 다시 와이너리와 조우했다. 이름은 프리모 에스테이트(Primo Estate). 주변이 온통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다. 특히 프리모 에스테이트에 들어서자마자 올리브 나무가 가득해 분명 올리브 오일을 생산하겠지 했는데, 추측이 맞았다. 셀러도어가 정말 예쁜 곳이다. 여기 셀러도어 직원은 지금도 생각이 날만큼 굉장히 친절했다.
이곳이 왜 특별한 와인 생산지인지 떼루아를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해주었는데, 지금 기억나는 것은 토양에 대한 것이다. 와이너리에서 가지고 있는 맥라렌 베일의 토양 구조에 대해서 연구한 지도를 우리에게 선뜻 건네줬다. 지금도 가지고 있는 귀중한 자료다. 와인도 정말 좋았지만, 올리브 오일도 테이스팅 할 수 있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한 병 샀다. https://www.primoestate.com.au/
프리모 에스테이트도 이탈리아에 근원을 둔 그릴리(Grilli) 패밀리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이탈리아에서 이민을 온 프리모 그릴리가 1973년 SA에 정착해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지금의 프리모 에스테이트는 그의 아들인 조셉에 의해서 설립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셉과 그의 아내는 1980년대에 이 지역에 새로운 와인메이킹 바람을 일으킨 선구자라고 하는데, 예를 들어 더블 프루닝, 코르동 컷팅, 보트리티스 등 많은 신기술을 맥라렌 베일에 소개했다. 현재 프리모 에스테이트는 버지니아에 15ha, 맥라렌 베일에 6.4ha, 클라랑돈에 12.6ha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 특히 클라랑돈(맥라렌 베일의 일부)에 위치한 포도밭은 해발고도가 280m인, 매우 특별한 곳이라고. 그냥 지나치다 들린 와이너리치고는 황송할 정도로 잘되어 있는 곳이었다.
다시 이동이다. 지니 가는 길에 포도도 찍고, 다음 와이너리를 어디를 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부인이 도저히 못 타겠다고 선포를 한다. 그래, 여태까지 탄 것도 잘했다 싶다. 그래도 두 군데 와이너리면 충분한 것도 같아서 다시 자전거를 끌고 돌아간다. 시간도 보니, 얼추 3시간이 다 되었다.
자전거를 반납하고, 마을 안에 있는 하디(Hardy’s)에 들려본다. 하디는 말할 것도 없는 맥라렌 밸리의 터줏대감 같은 와인이다. 이미 몇 번 마셔본 일이 있는 와인들을 다시 시음하고, 와인 잔을 가지고 나와서 싸 온 도시락과 간이 피크닉을 즐긴다. 하디는 가격대비 퀄리티도 나쁘지 않은 밸류 와인들이 많다. 배불리 먹고 집에 가기로 했는데, 귀가할 생각에 앞이 막막해진다. 그렇게 호주에서의 하루가 또 한 번 저물고 있다.
Contributor, Bae Doo Hwan
He was a cultural journalist who worked at the best Korean wine magazine, ‘Wine Review’. After the wine journey, he manages a small wine bar ‘Vino Anotonio’ in Seoul as a freelancer wine columnist. http://blog.naver.com/baedoobaedoo
배두환 기자는 대한민국 최고의 와인매거진에서 와인, 다이닝 등 다양한 문화 이야기를 조명해왔다. 와인산지로 떠난 1년간의 여행 후 현재 와인바, ‘비노 안토니오’를 운영하며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http://blog.naver.com/baedoobaed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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