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도록 선명한 그곳, 맥라렌 베일 AB&D & Maxwell in McLaren Vale
Photos by Bae Doo Hwan
맥라렌 베일의 세 번째 방문은 그 곳을 어떻게 갔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정말 익숙한 루트로 쉽게 갈 수 있었다. 마치 토박이처럼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서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걸어서 돌아다닐 수 있는 와이너리들을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얻은 지도를 바탕으로 검색해 본 후에 하나씩 돌아다녔는데, 예상치도 못한 와이너리가 덜컥 걸려버려서 상당히 기분이 좋았던 날이다.
익숙한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천천히 맥라렌 베일의 주요 와이너리들이 몰려 있는 초크힐 로드 Chalk Hill Road로 천천히 걸어갔다. 온통 포도밭이 천지라, 포도나무 사이를 걸어보기도 하고, 아직 달려 있는 포도도 따먹어보기도 하면서 즐겁게 걸어갔다.저 멀리 와이너리 간판이 보였는데, 이름이 맥스웰 Maxwell이다. 와이너리로 걸어 들어가려고 하다가, 샛길에 와이너리 하나가 더 있어서 눈길을 줘 봤다. 이름이 알파 박스 앤 다이스 Alpha Box n DICE다. 줄여서 AB&D라고 부른다. 독특한 이름이라서 호기심에 맥스웰보다 먼저 들어가 보기로 했다.
와이너리 셀러 도어가 굉장히 허름하다. 그냥 고물상을 개조한 것 같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셀러 도어 앞에서 문신을 잔뜩 한 근육질의 남자 두 명이 샌드위치를 우적우적 씹으면서 찔끔 찔끔 들어오는 우리 둘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 아마 한국에서 보면 100% 조폭으로 생각했을 거다.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정말 우스웠다. 왠지 겁이 나기도 하고, 그냥 나갈까 생각하기도 하다가, 그래도 또 이들이 만드는 와인 맛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 둘의 눈길을 피하면서, 사실 마음속으로 정말 겁이 났지만, 모른척하고 그냥 사진을 찍으면서 그리고 감탄하는 척 하면서 셀라 도어(창고 같은)로 유유히 걸어 들어간다.
셀라 도어를 가장한 창고에 들어갔는데, 이곳은 정말 유니크하다는 생각이 단 번에 들었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고물이고 오래됐고 지저분해 보이지만, 그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루자 아주 개성 있고 앤틱한 셀라 도어로 변신했다. 그들이 생산하는 와인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같은 레이블이 없이, 모두 아티스트들의 그림으로 레이블을 독특하게 제작해서, 그 자체로도 굉장히 매력이 있었다. 한 마디로 와인 병 그 자체로 디자인 소품이었다.
내부 인테리어에 감탄해 이것저것 사진을 찍고 있으니, 샌드위치 문신 청년1이 걸어 들어와서는, 어딘가에 전화를 해댄다. 우리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다. 전화를 끊자 우리에게 테이스팅을 할 거냐고 묻기에 당연히 예스! 문신 청년1을 자세히 뜯어보니, 잘생긴 훈남이다. 그리고 나중에야 알았지만 굉장히 친절하고 해박하고, 와인을 사랑하는 순수한 청년이다. https://www.alphaboxdice.com/
이들의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이들이 얼마나 창의적으로 와인을 만들고, 디자인에 신경을 쓰는지 알 수 있다. 2008년에 설립된 신생 와이너리이기도 하고, 해외로는 전혀 수출하지 않는 내수 위주의 와이너리이기 때문에 한국에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지만 이들이 규모를 앞으로 더 넓힐 생각이고, 홍콩 쪽으로 진출할 생각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독특한 인테리어만큼이나 와인 레이블도 아주 개성 있다. 매해 새로운 와인을 만들 때 아티스트가 디자인한 독특한 작품으로 와인 레이블을 디자인한다. 그 말은 매해 새롭게 블렌딩 되어서 만들어지는 와인들은 전혀 다른 유니크한 작품들이 레이블로 덧씌워져서 세상에 하나 뿐인 유니크한 와인으로 탄생한다는 이야기다.
포도는 바로사, 맥라렌 등지의 포도를 가지고 와인을 만들고 있는데, 품종들이 다채롭다. 호주 대표 품종인 쉬라즈는 당연하지만, 뗌쁘라니요, 산지오베제, 알리아니꼬 같은 쉽게 상상하기 힘든 품종들을 블렌딩에 이용하고 있다. 순수한 열정으로 와인을 만들어내는 이 와이너리가 정말 마음에 든다.
다음은 바로 옆에 있는 맥스웰로 들어갔다. 경치가 정말 너무 좋고, 날씨도 너무 좋다.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맥스웰은 AB&D와 비교를 하자면 대기업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AB&D가 극소량의 가라지 와인이라면 맥스웰은 많은 소비자들을 겨냥한 대중적인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와이너리를 둘러싸고 있는 포도밭들도 상당히 넓다. 시설이 아주 잘되어 있다. 목요일이나 금요일 혹은 주말에 왔다면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식사와 와인을 곁들일 수도 있다. 셀라 도어 앞에는 마치 포토 존이라도 되듯이 원형 테라스가 있는데, 이곳에 서면 맥라렌 베일의 심장부를 멋지게 조망할 수 있다.
맥스웰 와이너리는 마크 맥스웰(Mark Maxwell)에 의해서 시작되었는데, 90년대에 지금의 맥라렌 베일 다운타운으로 이주해서 지금까지 승승장구 하고 있는 곳이다. 마침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수확한 포도를 으깨서 곤죽을 만든 뒤 계속해서 그 곤죽을 섞어주는 마세라시용이 한창이었다. 건장한 남자 둘이서 펌핑 오버와 펀칭 다운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맥스웰 와이너리는 다른 독특한 와인으로 유명한데 바로 허니 와인이다. 이걸 Mead라고 부르는데, 생산량이 남반구에서는 가장 클 정도로 규모가 있다. 현 오너인 마크의 아버지인 켄(Ken)이 1950년대에 시작했고, 1962년에 시판했다고 한다. 사실 그렇고 보면 이 맥스웰 집안은 포도 와인보다는 허니 와인으로 돈을 벌었고, 지금의 아들이 그 돈으로 와인을 시작한 듯. 허니 와인을 오너가 직접 따라줘서 운 좋게 마셔봤는데, 정말 맛있었다. 오히려 와인보다 더 감탄을 할 정도. 이 Mead도 두 종류가 있는데, 차갑게 칠링해서 마시는 것과 살짝 끓여서 맛보는 것이 있었다. http://www.maxwellwines.com.au/
허니 와인과 멋진 맥라렌 베일의 경치를 보고 싶다면 맥스웰도 추천할만하다. 식사도 할 수 있으니, 돈과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미리 예약해서 와인과 함께 식사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Contributor, Bae Doo Hwan
He was a cultural journalist who worked at the best Korean wine magazine, ‘Wine Review’. After the wine journey, he manages a small wine bar ‘Vino Anotonio’ in Seoul as a freelancer wine columnist. http://blog.naver.com/baedoobaedoo
배두환 기자는 대한민국 최고의 와인매거진에서 와인, 다이닝 등 다양한 문화 이야기를 조명해왔다. 와인산지로 떠난 1년간의 여행 후 현재 와인바, ‘비노 안토니오’를 운영하며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http://blog.naver.com/baedoobaed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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